푸쉬킨 동상과 한러 문화외교

  • 작성자 :
  • KRD
  • 작성일 :
  • 15-04-01 16:06
  • 일   시 :
  • 2013.11.13
  • 장   소 :
  • 롯데호텔 서울
  • 첨부자료 :

본문

<푸쉬킨 동상과 한러 문화외교>

    

              허승철(고려대 교수, 한러대화 사무국장, 전 우크라이나 대사)

 

지난 11월 13일 한국을 공식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만 하루가 채 안되는 체한(滯韓) 시간 동안 청와대 정상회담,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 폐회식 참석, 인천의 바랴크호 기념비 참배 등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국내 언론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중 백미는 푸쉬킨 동상 제막식이었다. 서울 한복판인 을지로 사거리에 러시아 사람들이 한없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문호이자 ‘러시아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푸쉬킨의 동상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제막되는 광경은 러시아 TV에 중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푸쉬킨 동상은 국내에 최초로 세워진 외국 문호의 전신상이다. 푸쉬킨 동상 이전에 국내 공공장소에 건립된 외국 문인 동상은 대학로에 서있는 타고르 흉상이 유일하다. 약 1년 반 전 러시아작가협회로부터 푸쉬킨 흉상을 제작해서 한국에 보낼 수 있으니 고려대 교정에 세울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제안을 받은 필자는 이왕이면 푸쉬킨 전신상을 제작하여 서울 중심부 공원에 세워서 서울 시민 모두가 푸쉬킨을 가까이서 만나는 문화 명소를 만들면 좋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외국 문호의 동상 부지를 서울 중심부에서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지 못했었다. 11월 13일 어둠이 깔린 을지로 사거리 쪽 롯데호텔 코너에서 푸틴대통령을 모시고 진행된 동상 제막식의 사회를 맡은 필자는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드디어 푸틴대통령 방한에 맞춰 극적으로 동상 제막식을 하게 된 것에 대한 벅찬 감동을 느꼈고, 동상 건립을 위해 자기일처럼 나서서 애써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운 생각도 들었다. 필자는 푸쉬킨 동상 건립에 대한 작은 백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동상 건립 아이디어의 탄생과 제작, 반입 과정, 동상 부지 물색과 제막식에 푸틴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게 된 배경과 과정 등을 서술하고자 한다. 아울러 동상 건립 과정에 대한 잘못된 홍보와 인식도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하므로 모든 과정에 대해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푸쉬킨 동상 건립 아이디어를 최초로 국내에 전한 사람은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정승호 국방무관(육군 대령)이다. 정 무관은 필자가 우크라이나대사로 근무했을 때 초대 무관으로 부임하여 같이 근무하였고, 이후 주러시아 한국대사관의 무관으로 전근했다. 2012년 여름 정 무관은 모스크바에서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와 러시아작가협회가 푸쉬킨 흉상을 제작해서 여러 나라에 기증했는데, 이번에 한국에 동상을 기증할 의사가 있으니 고려대 교정에 세울 수 있는지를 문의해 왔다. 필자는 전화상으로 바로 푸쉬킨 같은 대문호의 동상은 이왕이면 전신상으로 제작해서 서울 시내 중심부에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러시아작가협회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러시아 어느 도시를 방문해도 곳곳에 서 있는 푸쉬킨 동상을 볼 수 있고, 심지어 필자가 공관장으로 근무한 우크라이나와 겸임 대사를 한 몰도바, 조지아(그루지아)에서도 푸쉬킨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푸쉬킨은 데카브리스트 반란에 연루된 혐의로 이 지역에서 몇 년 간 추방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필자가 들은 바로는 구소련 지역에 세워진 푸쉬킨 흉상, 전신상이 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정에 세종대왕 동상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 것처럼 러시아의 대부분의 학교와 공공장소에는 푸쉬킨 동상이 서 있는 셈이다. 푸쉬킨 동상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동상이 러시아에서 제작되면 국내 반입이나 동상 부지 확보, 동상 건립 허가 등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는데, 이후 겪게 될 수많은 어려움과 행정적 장애는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동상 제막식에 축하사절단으로 온 러시아작가협회 푸쉬킨분과위원장인 노보숄로프씨(예비역 대령)는 깊은 친분을 쌓은 정 대령이 곧 서울로 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선물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푸쉬킨 흉상을 제작해서 정 무관이 직접 가지고 귀국하도록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푸쉬킨 동상 건립 주체와 실무 업무를 국내 어느 기관이나 단체가 맡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한 끝에 동상 건립의 주관 기관은 양국 대통령이 2010년 출범시킨 한러대화(Korea-Russia Dialogue)로 하고, 실무적 업무 진행은 필자의 제자인 김선명박사가 운영하는 푸쉬킨하우스에 맡기기로 했다. 러시아어 교육과 출판 사업을 겸하고 있는 사설기관인 푸쉬킨하우스는 2년 전부터 ‘러시아어의 날’로 공식 지정된 푸쉬킨의 생일인 6월 6일 즈음하여 푸쉬킨 페스티발을 진행하고 있었고, 학원 명칭 자체가 ‘푸쉬킨’이라 홍보 효과도 클 것 같았다. 푸쉬킨하우스는 이때부터 동상 제막식 때까지 주로 러시아작가협회와의 교신을 담당하였고, 필자는 각 단계마다 필요한 사항을 지시하며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하거나 지인들과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진행시켰다.

 

필자로부터 푸쉬킨 흉상 대신 전신상 건립 제안을 받은 러시아작가협회는 일이 커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즉각 동의의 뜻을 표했으나, 약 5만 불이 드는 전신상 제작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쳤다. 필자는 한러대화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고 고려대 내에 러시아문화센터를 운영하는 루스키미르재단에 지원을 요청해 볼 것을 제안했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러시아에 진출한 삼성이나 LG에 후원 요청을 해 볼 생각을 했다. 다행히 2013년 초 러시아 사업가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전신상 제작을 후원하기로 하여 제작비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었다. 동상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단계로 동상 건립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 러시아대사관이 서울시와 교섭하여 동상 부지를 확보해 주기를 바랐지만, 대사관측에서는 한러대화에서 시작한 일이니 먼저 필자가 나서서 서울시를 접촉하고 진행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5월 중순 평소 친분이 있던 김형주 전 서울 정무부시장의 소개로 기동민 현 정무부시장을 만났다. 서울시와 접촉을 할 때 필자는 세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서울시와 모스크바시가 상호 교차 방식으로 문화공원을 지정하고 여기에 푸쉬킨 동상을 세우는 안, 즉 서울의 공원 한 곳을 ‘러시아문화공원’으로 먼저 지정하여 푸쉬킨 동상을 필두로 차례로 러시아 문인이나 예술가의 동상을 세우고, 모스크바시는 ‘한국문화공원’을 지정하여 이곳에 한국 문인, 예술인의 동상을 세우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 안은 서울의 공원 한 곳을 ‘외국문호공원’으로 지정하여 푸쉬킨 동상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의 동상을 유치하여 문화 명소를 만드는 안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푸쉬킨 동상만을 위한 작은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서울시 공원관계자와 국제교류실 직원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된 부시장과의 면담은 예상만큼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였다. 러시아문화공원을 지정하는 안을 제시하자,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서울시장과 모스크바시장이 먼저 교섭을 하여야 하고, 양 시장이 합의를 하더라도 시의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단순히 정동공원이나 배재공원 등에 푸쉬킨 동상을 위한 3-4평의 부지를 확보하는 것도 공원시설물 변경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서울의 공공부지에 왜 외국 문호의 동상을 세워야 하는지를 설명해 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동상 문화의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거대한 문화적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장벽은 이후 여러 기업과 기관을 접촉하면서도 반복해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둘러싼 물리적 충돌을 언급하는 곳도 두어군데 있었다. 부시장과의 면담은 러시아대사가 시장을 만나 직접 논의하도록 하자는 얘기를 하고 끝을 맺었다. 면담 결과를 보고 받은 브누코프 대사는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추진하였으나 시일이 지체되었고, 7월 초 대사가 휴가 겸 G20 준비 등으로 약 두 달간 본국으로 돌아가 체류하는 바람에 서울시장과의 교섭은 무산되었다. 이러는 중에 러시아작가협회에서는 푸쉬킨 동상이 곧 완성될 예정이니 서울로 운송할 준비를 해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필자는 바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차례로 한러대화 명의의 공문을 보내 동상 공수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한러 간 대표적 문화외교 상징이 될 푸쉬킨 동상의 운송을 맡아주면 항공사의 문화마케팅에도 크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다행히 아시아나항공에서 선뜻 협찬의 뜻을 밝혀 와서 동상 공수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고 생각했는데, 7월에 샌프란시스코 공항 사고가 발생하여 동상 운송이 지연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8월초 동상이 완성되자 아시아나항공은 지체 없이 모스크바 왕복 화물기편으로 푸쉬킨 동상을 서울로 운송하여 왔다. 무게가 4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동상을 비용을 들여 공수했다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였어야 했을 것으로 짐작이 든다. 큰 사고를 수습하는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약속대로 푸쉬킨 동상을 지체 없이 운송해 준 아시아나항공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동상은 필자의 친구인 항공화물회사 에코비스 김익준 사장의 도움으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통관을 마쳤고,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푸쉬킨하우스의 창고로 운반하여 보관하였다.

 

한러 수교 기념일인 9월 30일을 동상 제막 날짜로 잡고 있던 필자는 여름이 거의 끝나가면서 초조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도록 동상 부지가 확보되지 않아 9월 30일에 제막식을 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 무렵 푸틴대통령이 11월 중순 한국을 방문한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상 제막식에 러시아 장관급 인사라도 참석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상태에서 푸틴대통령의 방한 소식은 전혀 예기치 않은 희소식이었다. 푸틴대통령 방한 시기를 전후해서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고, 대통령 방한에 맞춰 열리게 될 한러대화 3차포럼 대표단으로 고위급 인사가 다수 들어오므로 이분들을 모시고 제막식을 거행하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푸틴대통령을 직접 모시고 동상 제막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국내 여러 기관을 방문하며 푸쉬킨이 러시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며, 러시아의 동상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관계자들에 대해 안타까운 생각을 금치 못하였던 나 자신도 러시아의 문화적 깊이에 대한 이해가 한참 부족하였다고 자인할 수밖에 없다. 푸쉬킨 동상은 서울에 운송되었는데 서울 중심부에 동상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인천시에서는 바랴그호 기념비가 있는 연안부두에 푸쉬킨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몇 차례 하였고, 서울 중심부에서 떨어진 지역도 후보지로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푸틴대통령 방한 때 동상을 제막해야 한다는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면서도 애초에 약속한 대로 서울 중심부에 동상을 세워서 시민 누구나가 쉽게 동상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동상이 선 자리는 서울의 문화적 명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포기하지 않았다. 필자는 러시아대사관에서 공식으로 동상 부지 제공을 요청하면 서울시가 이에 협조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일은 기대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10월 초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고 생각한 필자는 부지 확보를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러시아와 관련이 있는 원로급 인사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서울시장실, 국제관계대사실, 국제교류실, 문화디자인관광본부를 동시에 접촉했다. 왠만한 중앙 부처 몇 배가 되는 행정조직을 갖춘 서울시는 모든 게 천천히 움직였고, 관료주의적 장벽도 꽤 높았다. 다행히 주무부서인 문화디자인관광본부장이 고등학교 동기라서 동상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처음에는 동상 건립 허가를 내주는 미술품·조각품심의위원회의 심의과정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시켜보겠다고 했는데, 관련 규정을 세밀히 검토한 뒤에는 현재 서울시의 조례 상 한국 역사와 관련이 없는 외국인의 동상은 근본적으로 서울의 공공용지에 세울 수 없으니, 빨리 사유지 중에서 동상 부지를 찾아보라는 연락을 해왔다. 무슨 일이든 첫 길을 개척해서 가는 사람은 한참을 뚫고 나간 길이 제 길이 아니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울의 공원에 푸쉬킨 동상을 건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모른 채 반 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이 허탈했다. 서울시의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에 관한 조례’의 ‘건립 대상 및 선정 규정’을 보면 ‘국난극복 및 국권회복에 공헌, 민족문화·학문·기술의 발전에 획기적 기여, 국가·사회발전에 헌신적 봉사’를 한 인물의 동상만이 공공부지에 설립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다행히 푸쉬킨 동상 건립 부지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현 조례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조례를 개정할 예정이라 한다. 초읽기처럼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동상 부지를 다시 물색해야 하는데 러시아작가협회와 러시아대사관에서는 푸틴대통령이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니 빨리 동상 건립 예정지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후에 제막식에 온 작가협회 대표 노보숄로프씨의 얘기를 들으니,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러시아대통령실에 푸틴대통령이 동상 제막식에 참석해 줄 것을 청원했는데, 대통령실에서는 푸쉬킨 동상 제막식은 매우 의미가 큰 문화외교 행사이므로 대통령이 다른 어떤 행사보다 우선해서 참석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 중심부에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시종일관 주장해 온 필자는 만약 푸틴대통령 방한 때 동상 제막을 하지 못하면 모든 비난과 질책을 혼자 감수해야 할 상황에 처했지만, 그렇다고 동상을 인천으로 보내거나 중심부에서 떨어진 곳에 세울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한러대화 사무국장으로서 11월 13일 한러 양국 대표단 200여명이 참석하는 한러대화 3차포럼 준비 실무를 총지휘해야 하는 필자는 몸이 두 개라도 한러대화와 동상 제막을 동시에 준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한러대화 포럼은 이전에 행사 조직 경험이 있는 사무국직원들을 믿고 일을 진행해도 되지만, 동상 부지 문제는 누구에게 대신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10월 내내 매일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동상 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코너에 몰린 필자는 러시아와 관련이 깊은 주요 인사들께 일일이 전화를 드려 도움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한러대화 수뇌부뿐만 아니라 한러친선협회 회장단도 최선을 다해서 동상 부지 물색에 나서주셨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원로, 명사들이시고, 맡고 있는 직임이 여러 개씩이라 모두 공사다망하신 분들이 푸틴대통령 방한 때 푸쉬킨 동상 제막을 해야 한다는 일심으로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셨다. 필자가 눈여겨 본 서울 동상 후보지를 말씀드리면 해당 기업과 기관 등에 직접 연락을 해주신 분들을 일부 소개하면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님, 김영주 토지문화재단이사장님, 박진 전 의원님, 손경식 전 대한상공회의소장님, 심실 국제문화교류협회장님, 이기수 전 고려대총장님, 이윤호 전 러시아대사님, 이희범 경총회장님, 장만기 인간개발원장님, 정태익 전 러시아대사님 등이다. 필자도 직접 나서서 발품을 팔아가며 서울 중심부에서 동상 부지를 물색하였다. 동상 부지 확보 데드라인을 3-4일 남긴 10월 20일은 집사람과 주일 예배를 일찍 드리고 오전 10시부터 약 다섯 시간 동안 계동 현대 사옥부터 종로 1-2가, 광화문, 세종로, 청계천 일대의 여러 기업 사옥 앞마당을 직접 돌아보며 동상 부지를 찾았다. 동상 부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처음 마음에 두었던 남대문 근처의 협회 부지, 광화문의 문화관련 기업 부지 등이 차례로 내부 반대나 동상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거절되었을 때의 낙담은 매우 컸다. 서울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지만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의 장소가 후보지로 나서서 러시아대사도 현장 답사를 하고, 바로 다음날 최종 후보지를 러시아대통령실에 알리려는 시점에서 롯데호텔에서 을지로사거리쪽 코너를 동상 부지로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당일 오후 브누코프대사와 현장 답사를 한 자리에서 최종 결정을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현장 정비와 동상 기단 제작에 들어갔다. 브누코프 대사 내외는 이때까지 필자가 추천한 세 곳의 동상 부지를 직접 현장 답사를 하며 적극적으로 동상 제막식 준비에 나섰다. 다행히 동상은 푸틴대통령 도착 이틀 전에 건립되었고, 필자는 일주일 전에 내한한 러시아대통령실 의전팀과 제막식 진행을 협의하고, 두 번이나 현장에서 제막식 리허설을 하였다. 제막식은 러시아식으로 하기로 하여 주진행(Master of Ceremony)역을 맡은 필자가 대통령 영접과 제막식 진행을 맡았다. 원래 단상 전면에는 푸틴대통령과 진행자만 서기로 되어 있었는데, 동상 건립에 핵심적 공헌을 한 노보숄로프씨, 정승호대령, 김선명원장도 단상에 도열하게 하여 푸틴대통령이 행사장에 입장하자마자 악수를 하며 노고를 치하받도록 하였다. 제막식에 박근혜대통령도 참석을 하셔서 간단한 축사를 하시도록 여러 경로를 통하여 청원을 하였으나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고, 한국 정부를 대표하여 유진룡문광부장관이 참석하였다. 우리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동상에 헌화를 하였더라면 이 장면이 바로 러시아TV를 통해 주요 뉴스로 러시아전역에 방영되었을 것이고, 중국 방문시 중국어로 강연을 한 것 이상의 문화외교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 대통령은 적절한 기회에 푸쉬킨 동상을 한 번 찾아보실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12월 18일 낮에는 동상이 서있는 광장을 ‘푸쉬킨 플라자’로 명명하는 작은 행사가 있었다. 행사 전에 만난 송용덕 롯데호텔 대표의 얘기로는 동상이 건립된 이후 동상에 꽃을 갖다놓는 사람들이 매일 끊이지 않는다고 하니 먼 이국땅에 서 있는 푸쉬킨이 한국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장에서 다시 만난 브누코프대사와는 푸쉬킨이 북쪽을 향해 서 있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바라는 의미라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크게 웃었다. 한러대화 문화예술분과에서는 내년에 박경리 선생 동상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세우기로 결정하였으므로 동상 건립을 통한 한러문화교류는 물꼬가 터졌다고 본다. 러시아에서의 한국 문호 동상 제막식에 우리 대통령도 꼭 참석하여 문화융성과 문화외교의 진수를 보여주였으면 하는 바람을 끝으로 푸쉬킨 동상 건립에 대한 작은 백서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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